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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고기요리의 역사
    2021년 FINANCE 2021. 10. 11. 10:58

    샤부샤부는 우리나라 사람도 즐겨 먹는 일본 음식입니다. 얇게 썬 소고기를 각종 해산물이나 채소와 함께, 끓는 육수에 살짝 데쳐서 먹습니다. 샤부샤부와 비슷한 요리로 일본전 골도 있습니다. 소고기를 두부, 배추, 쑥갓, 다시마, 우무 등과 함께 냄비에 조리한 후 계란을 푼 접시에 덜어 먹는 음식입니다. 일본식 불고기, 내지는 소고기 전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일본전 골과는 별도로 규 나베라고 하는 소고기 냄비 전골도 있습니다.

     

    일본의 소고기 요리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음식이 만들어진 역사가 무척 짧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도 즐겨 먹는 샤부샤부는 사실 1940, 50년대에 발달한 음식입니다. 일본식 소고기 전골인 스키야키, 그리고 규나베는 1870년대에 등장했습니다. 돼지고기 요리는 더 늦습니다.

     

    서양의 포크커틀릿을 일본식으로 변형시켜 만든 돈가스 역시 1929년에 처음으로 선을 보였다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생선이 아닌, 네발 달린 동물의 고기를 재료로 만든 일본 음식은 거의 대부분 그 역사가 길어야 150년을 넘지 않습니다. 다양한 요리가 발달한 일본음식 중에서, 왜 하필 고기 요리는 이렇게 역사가 짧은 것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일본사람들은 육식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인들은 무려 1,200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물론 일본 사람들이 처음부터 고기를 먹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고대 일본인들은 당연히 고기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서기 675년, 덴무(天武) 일왕이 최초로 가축을 도축하지도 말고, 먹지도 말라는 육식 금지령을 선포합니다. “소와 말, 개, 원숭이, 닭을 먹으면 안 된다. 그 밖의 동물은 금지하지 않는다. 만일 이를 어기는 자가 있으면 처벌한다” 일본의 고대 역사책인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덴무 일왕이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한 표면적인 이유는 살생을 금지한 불교의 영향 때문입니다. 하지만 농업 및 군사적 필요성도 있었습니다. 소와 말, 개가 그렇습니다. 민속신앙도 작용했다고 합니다. 원숭이는 사람을 닮아서, 닭은 때를 알리는 신성한 동물이기 때문에 도축을 금지했다고 풀이합니다. 덴무 일왕 이후에도 일본에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추가로 육식 금지령이 내려집니다. 그리고 처벌도 강화됩니다. 법을 어기고 고기를 먹는 자는 먼 섬으로 귀양을 보냈다고 합니다.

     

    사실 육식을 금지했다고 해서 모든 동물의 고기를 먹을 수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가축이 아닌 멧돼지나 사슴과 같은 들짐승, 닭이 아닌 오리나 기러기와 같은 날짐승의 고기는 먹을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몸보신용으로 몰래 가축을 잡아서 먹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육식금지령이 오랜 세월 지켜지면서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물고기나 조개류를 제외한 동물의 고기를 먹는 것을 터부시 하게 됐습니다. 짐승의 고기를 먹으면 몸과 마음이 부정을 탄다고 믿게 된 겁니다.

     

    그런데 1871년, 메이지(明治) 일왕이 무려 1,200년 동안 지속되어 온 육식 금지령을 해제합니다. 이제부터는 고기를 먹어도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정도가 아니라 고기를 먹으라고 장려를 합니다. 그러면서 왕이 솔선수범해 공개적으로 고기를 먹었습니다. 천년이 넘도록 고기를 먹지 않았던 일본인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수구파들은 메이지 일왕의 육식해금에 크게 반발합니다. 1872년 2월 18일, 열 명의 자객이 일왕이 살고 있는 궁중에 침입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네 명은 현장에서 사살됐고, 한 명은 중상을 입었으며 다섯 명은 생포됐습니다. 사로잡힌 자객을 심문한 결과 일왕의 육식금지 해제 조치에 반발해 궁중으로 난입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들의 주장인 즉, “서양 오랑캐의 영향을 받아 일본사람이 고기를 먹게 되면서 신성한 땅이 더럽혀졌기 때문에 신들의 땅인 일본에서 신들이 머물 곳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의 땅과 일본 정신을 지키려고 궁중에 침입했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육식기피 전통이 얼마나 뿌리 깊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메이지 일왕은 왜 국민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육식금지 조치를 해제했을까요? 키가 작아 왜(倭)라고 불린 일본인의 체형을 개선하겠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서양사람들처럼 고기를 먹어 체격을 키우겠다는 겁니다. 키 작은 열등감도 극복하고 육식을 하는 서양 음식문화를 흡수해 서구사회에 동화하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러니까 육식 해금은 유신의 일환이었던 겁니다.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메이지 유신의 사상적 배경은 아시아를 벗어나서 서구화를 지향한다는 탈아입구(脫亞入歐)입니다. 여기에는 음식을 통한 체질개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메이지 유신을 음식혁명이라고도 합니다. 고기를 먹으라고 장려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군대에서는 서양처럼 매일 밥 대신 빵을 지급해 병사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천년이 넘도록 고기 맛을 보지 못했던 일본 사람들입니다. 처음에는 고기 먹는 것을 무척 부담스러워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발달한 음식이 바로 일본전골입니다. 일본전 골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원래 삼나무를 뜻하는 스기(すぎ)와 구이를 뜻하는 야키(燒き)의 합성어로 삼나무 상자에다 생선이나 고래 고기를 굽거나 조려서 먹었던 음식이었다고 합니다.

     

    조선 영조 때 일본을 다녀온 통신사의 기록에도 일본전 골이 보입니다. 서장관으로 통신사를 수행했던 조명채는 “생선과 나물을 끓인 음식으로 우리의 신선로와 비슷하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육식 금지령이 해제된 이후 “소고기를 먹지 않으면 문명인이 아니다”라며 육식을 강력하게 권장하니까 전통 생선 요리인 일본전 골에 슬쩍 소고기를 넣어 먹기 시작합니다. 이후 생선 요리가 지금의 일본식 소고기 전골인 일본전골로 발전합니다. 이어서 등장한 음식이 일본전골과 비슷한 샤부샤부입니다. 속설에는 소고기에 익숙해진 일본인이 제2차 세계대전 때 중국에서 양고기 전골을 보고서 일본으로 도입해 발전시킨 음식이라고 하지만 근거는 확실치 않습니다. 어쨌든 일본에서 샤부샤부는 1940, 50년대에 유행을 합니다. 따지고 보면 1,200년의 육식금지 전통을 깨면서, 키 작은 왜인의 체격을 개선하려고 했던 노력이 지금 우리도 즐겨먹는 일본의 소고기 요리인 일본전 골, 샤부샤부의 발전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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