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부자들이 먹던 산해진미
    2021년 FINANCE 2021. 10. 11. 09:54

    옛날부터 아픈 몸은 물론이고 상처 받은 마음까지도 치료하는 동양의 전통 힐링음식이 있습니다. 바로 전복인데요. 2000년 전인 1세기 때, 쿠데타로 한나라를 무너뜨리고 신(新) 나라를 세운 후 황제를 자칭했던 왕망(王莽)은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근심 걱정 때문에 술이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뿐인가요 음식은 아예 삼키지를 못했다고 하는데요. 이때 왕망이 유일하게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 한 가지 있었는데, 바로 전복이었다고 합니다.

     

    조선의 왕들 중에서 가장 장수했던 임금인 영조 역시 당파싸움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복통에 시달렸는데요. 입이 짧았던 영조지만 전복과 송이, 꿩고기와 고추장만 있으면 수라를 잘 들었다고 하니까 전복이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약선 음식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짝사랑의 상처로 인해 마음을 다친 분들한테는 전복조차도 효과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조개와 달리 전복은 껍질이 한쪽에만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짝사랑의 상징으로 여긴다고 하는데요, 일본의 고대 시집인 만엽집(萬葉集)에 “어부가 날마다 잡아 올리는 전복 껍데기처럼 내 사랑도 날마다 짝사랑”이라고 푸념하는 구절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전복은 예로부터 부자들이 먹는 산해진미였습니다. 바다에서 나오는 진미 중에서도 전복이 으뜸인데요. 지금도 중국에서는 바다의 4대 보물, 전복, 해삼, 상어 지느러미, 생선 부레 중에서도 전복을 최고로 꼽습니다. 명나라 때 발행된 백과사전 오잡조(五雜俎)에서도 전설 속의 산해진미는 수없이 많지만 실제로 세상의 부자들이 먹는 산해진미는 남방의 굴, 북방의 족발, 서역의 말젖 그리고 동방의 전복이라고 했는데요. 비록 옛날이야기지만 전복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부를 상징했습니다. 이처럼 전복이 귀하고 좋은 해산물이다 보니 다양한 요리법이 발달했는데요.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는 회를 초장에 찍어 먹는다는 기록과 함께 주사위 모양으로 썰어 전복껍데기에 끓이거나 굽는다고 했습니다. 요즘 전복 또는 소라구이와 다를 것이 없죠. 또 전복 가루를 약과처럼 만들어 먹으면 전복 맛은 변함이 없는데 부드럽기는 두부와 같아 먹기가 편하다고 했습니다. 더불어 진연의궤(進宴儀軌)와 같은 궁중연회의 상차림에도 전복찜, 전복초 등 다채로운 전복 요리가 등장했습니다.

     

    중국 사람들도 진짜 전복을 좋아하는데요, 가장 고급스럽게 먹는 방법으로는 말린 전복을 불려서 찐 후 담백하게 간장 소스를 뿌린 전복 찜, 전복 스테이크를 꼽습니다. 값 비싸고 맛있는 전복을 먹으면서 불필요하게 다른 맛을 곁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요, 사실 중국 요리 중에서는 샥스핀이나 제비집 수프를 뛰어넘어 가장 값비싼 요리가 전복입니다. 불도장에서부터 전가복에 이르기까지 비싼 요리에는 대부분 전복이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전복은 왜 옛날부터 힐링푸드로 유명했을까요? 동의보감이나 중국의 본초강목에는 전복 껍데기가 눈에 좋기 때문에 석결명(石決明)이라고 부른다고 나오는데요. 일반적으로는 전복이 피로 해소와 원기회복에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음식 성분보다는 무엇보다도 뛰어난 맛에다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특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삼국지의 간웅, 조조 역시 전복을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하는데요, 조조가 사망했을 때 셋째 아들인 조식이 아버지를 기리는 추도의 글을 쓰면서  자신이 서주 자사로 있을 때 전복을 무려 100개나 구해서 조조에게 바쳤다고 자랑했습니다. 지금의 중국 장쑤 성 일대에서 구해 바친 전복이 고작 100개에 불과했다는 이야기이니 그만큼 구하기가 어려웠다는 이야기이지요.

     

    상처 입은 전복의 눈물이 진주가 되는 것처럼 전복은 해녀의 눈물과 정성이 더해져 조개류의 황제라는 소리를 듣게 됐는데요. 혹시 ‘숨비소리’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으십니까? 바다 속으로 잠수했던 해녀가 숨을 참고, 또 참다가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내뿜는 소리라고 하는데요, 예전 해녀들이 목숨 걸고 바다에 뛰어들어 한 두 개씩 따오던 것이 바로 전복입니다.

     

    전복이 이렇게 흔치 않았기에 해녀가 전복을 따오면 관리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그 자리에서 바로 거두어 갔으니 물질한 해녀의 바구니 속에는 전복 껍데기만 남았다고 합니다. 때문에 세종 때 제주목사를 지낸 기건(奇虔)이라는 분은 전복 따는 해녀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는 평생 동안 전복을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이지만 본질은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좋은 음식, 맛있는 요리에는 그만큼 만든 사람의 땀과 눈물이 스며있기에, 먹으면 힐링이 되는 것 아닐까요?

     

    세상일이 마음먹은 것처럼 풀리지 않는다 싶을 때, 몸과 마음이 피곤하고 짜증이 날 때 있으시죠? 이럴 때 역사에 기록된 인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전복을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풀어 보면 어떨까요? 전복 하나로 부자가 된 기분을 맛보거나 해녀의 눈물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