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역사 속 '게 요리' 마니아
    2021년 FINANCE 2021. 10. 11. 09:43

    아주 오래전에 “니들이 게 맛을 알아?”라는 광고 문구가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게 맛을 아시나요? 따지고 보면 인류 역사상 게처럼 많은 사람들로부터, 깊은 사랑을 받아 온 음식도 드문 것 같습니다. 게 예찬론이 얼마나 다양했는지 서로서로 “니들이 진짜 게 맛을 알아?”라고 따지며 다투는 것 같습니다.

     

    게 예찬론자 중 한 명이 주당들의 영원한 우상, 이태백이었습니다. “달빛 아래 홀로 술 마시며”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이태백은 “게 다리는 신선이 먹는 불사약”이라며 “맛있는 술 마시며 달빛 타고 높은 누각에 올라 취해 보겠다.”라고 노래했습니다. 달과 달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벗 삼아 게 다리를 안주 삼아 마시는 술이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습니다.

     

    고려의 문인 이규보도 게는 산해진미인 곰발바닥보다 맛있다고 했습니다. 눈처럼 하얗고 통통한 게 다리 살을 먹으면서 오른손을 다치면 왼손으로 먹으면 되고, 그러다 술에 취해 잠들면 아픈 고통도 느끼지 못하니 게 다리야말로 진정한 의사라고 찬양했습니다. 과연 당나라 최고의 시인 이태백과 고려 제일의 문장가 이규보 중에서 누가 진정으로 게 맛을 즐겼던 사람일까요?

     

    게 중에서도 진짜 맛있는 부분은 게의 집게발이라고 합니다. 다친 손의 상처까지 잊도록 할 만큼 맛있는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겠습니다만 옛날 사람들은 게 다리에서 불굴의 정신을 배우려고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자녀나 후학을 가르칠 때 게에서 인생의 교훈을 찾았는데요. 게는 튼튼하고 강하기가 호랑이와 다퉈 싸울 정도라고 했습니다. 특히 꽃게가 그렇다는데요,

     

    꽃게는 아무리 덩치가 큰 짐승과 싸우더라도 집게발을 치켜들고 대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강 투호, 다시 말해 호랑이와도 다툴 만큼 강인한 게의 집게발에서 임전무퇴의 정신을 떠올렸던 것입니다. 때문에 집게발을 먹으면 게의 튼튼한 기운이 전해져 힘이 솟구친다고 믿었던 모양입니다. 지금은 맛보기 힘든 별미 중의 하나로 대게 다리를 말려서 포로 만든 해각포가 있었는데요, 조선시대에는 동해안 지방의 명물 음식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은 ‘삼척에서 잡히는 대게는 크기가 강아지만 하고 다리는 큰 대나무 줄기만 한데 포로 만들어 먹으면 좋다’고 했습니다. 또 일제강점기 때 서적인 해동죽지에도 ‘해각포는 경상도 영해지방의 별미로 달고 기름지며 부드러워 세상에서 그 맛을 일품으로 친다’고 했습니다.

     

    흔히 대게는 크기가 커서 생긴 이름이라고 아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실은 길게 뻗은 다리가 마치 대나무 마디처럼 이어졌다고 해서 대게라고 부릅니다. 한자로는 보통 자줏빛 게라는 뜻의 자해로 표기되죠. 지금 대게 산지에서도 해각포는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예전 명사들이 꼽았던 최고의 대게 맛, 대게 다리 포가 지금은 문헌 속 유물로만 머물러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그런데 조선 제22대 임금인 정조가 이런 말을 들으면 “진짜 게 맛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혀를 찼을지도 모릅니다. 정조는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이 별미인 꽃게탕을 좋아했다고 하는데요. 당시 정조가 특별히 총애했던 승지 정민시의 처갓집에서 꽃게탕을 잘 끓인다는 소문이 한양에 자자했습니다. 그러자 정조가 정민시를 불러 장모께 부탁해 꽃게탕을 끓여 먹자고 청했습니다. 사위의 부탁을 받은 장모가 꽃게탕을 끓이고 있는데 이를 본 정민시의 장인 이창중이 자초지종을 듣더니 “신하 된 자가 사사로이 음식을 만들어 임금께 바쳐서는 안 된다”며 꽃게탕을 땅에다 엎어 버렸습니다. 광해군 때 잡채를 만들어 바쳐 판서가 됐고, 더덕요리로 좌의정에 오른 인물이 있었던 것과 달리 임금님이 먹고 싶다는 꽃게탕을 엎은 이창중도 기개가 대단하지만, 그런 그를 벌주지 않고 중용한 정조 역시 큰 인물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참고로 꽃게는 꽃처럼 예뻐서 꽃게로 불리는 것이 아닌데요. 등껍질에 꼬챙이처럼 뿔이 두 개 있어 꼬챙이 곶(串) 자를 써서 꽂게(串蟹)로 불리다가 지금은 꽃게가 됐습니다. 한편 게 맛의 진수는 게장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요. 사실 게장은 밥도둑 정도가 아니라 고대로부터 하늘에 바치는 음식이었습니다. 유교 경전인 주례의 해설서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는 청주의 게장을 준비한다고 했습니다. 청주는 중국 태산의 동쪽 발해만 지역으로 이곳에서 잡은 게로 장을 담그면 뼈와 살이 녹아 젓갈이 된다고 했습니다.

     

    밥도둑이라는 게장이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적도 있는데요. 조선 제20대 임금 경종이 바로 게장을 먹다가 승하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게장은 정적을 숙청하는 핑계가 되기도 했습니다. 경종은 즉위 4년 만에 사망했는데 조선왕조실록에는 임금이 서로 상극인 게장과 감을 먹고 밤새 배가 뒤틀려 아파하다 승하했다고 나옵니다. 경종은 소론의 지지를 받았고, 뒤를 이은 영조는 노론의 후원을 받았던 왕이었는데요, 일부 소론 인사가 동궁이었던 영조가 보낸 게장을 먹고 경종이 승하했다는 소문을 퍼뜨리다가 소론이 숙청당하는 빌미를 제공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게 요리를 좋아하지만 생김새 때문에 오해도 많이 받았습니다. 게의 외모를 놓고 교훈으로 삼기도 했는데 게를 무장공자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딱딱한 껍질 때문에 겉보기에는 꼿꼿해 보이지만 실은 창자가 없어 실속이 없다는 뜻이니 소신 없고 줏대 없는 사람을 빗대어 부르는 말입니다. 하지만 게도 창자가 있습니다.

     

    게에 대한 오해의 압권은 인간의 해석입니다. 동양화 중에서 게 그림은 합격을 기원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게는 딱딱한 갑옷을 입고 있으니 한자로 첫째인 갑을 의미하기 때문에 일등으로 합격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게가 과거를 앞둔 유생들의 금기 식품이라고 했습니다. 게의 한자는 해인데 글자 속에 풀어질 해자가 들어 있어 낙지처럼 낙방을 연상시킨다는 것입니다. 게는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이 제멋대로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으니 게가 “나보고 어쩌라고?”라며 외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진짜 게 맛을 아시겠습니까? 게 한 마리 먹으며 울고 웃고 시기하고 다투니 인생이 바로 게 맛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