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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돔(도미)의 특별한 의미
    2021년 NEW FINACE 2021. 11. 8. 12:17

    설 차례 상에 빠지지 않는 생선

    특별한 날에 사람들한테 절 받는 생선이 몇 가지 있지요, 조기, 민어, 그리고 도미 같은 생선인데요, 모두 맛도 맛이지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생선입니다. 먼저 조기는 기운을 차리게 해주는 생선인데요, 이름부터 한자로 도울 조(助), 기운 기(氣) 자를 쓰기에 민간에 떠도는 속설뿐만 아니라 한의학서에서도 입맛을 돋우어 기운을 보충하는 데는 최고라고 했고요, 우리가 설 차례 상에 조기를 빼놓지 않는 것처럼 중국에서도 새해 조기를 먹으면 부자 된다며 춘제 식탁에 올리는 단골 생선입니다. 민어 역시 보통 생선이 아닙니다. 관혼상제의 필수품으로 백성의 물고기라는 이름과는 달리 값비싼 생선이었기에 예전에는 주로 양반집 잔치에 쓰였는데요, 바다에서 나는 약초라고 했을 정도로 몸보신 음식으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절 받는 생선 중에서 으뜸은 아무래도 도미를 꼽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물론이고 일본과 중국에서도 도미는 행운을 부르는 생선이라며 잔칫상에 빠지면 섭섭한 요리로 여겼는데요. 동양 삼국에서는 왜 이렇게 도미를 최고의 생선이라고 했을까요? 무엇보다도 도미가 장수만세의 물고기이기 때문입니다. 도미는 평균 수명이 30-40년에 이른다고 하는데요, 생선 중에서는 수명이 상당히 긴 편에 속하기 때문에 장수를 축원하는 잔칫상 요리로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게다가 여러 종류의 도미 중에서도 특히 연회 상에 자주 차려지는 참돔은, 한번 짝을 정하면 반려자와 평생을 함께 하는 일부일처를 고집하는 생선이기 때문에 결혼식 피로연이나 기념식에서 부부의 백년해로를 기원하는 음식으로 쓰였던 겁니다.

    상서로운 생선, 행운의 물고기

    뿐만 아니라 참돔은 색깔이 분홍빛이어서 일본에서는 상서로운 생선, 행운의 물고기로 여겼고요, 중국에서도 원래의 이름 이외에 길한 징조를 더하는 생선이라는 뜻에서 가길어(加吉魚)라는 별명으로 부르며 특별한 날, 행운을 빌면서 먹었습니다. 이런 상징적인 의미 이외에 도미가 잔칫상에 빠지지 않는 생선이 됐던 진짜 이유는 아무래도 그 맛이 뛰어났기 때문이겠지요, 도미가 맛있는 고급 생선이라는 사실이야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장맛도 뚝배기에 끓여야 제 맛인 것처럼 도미 맛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 요리들이 있습니다.

    도미 요리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요리로 양반은 물론 궁중에서도 즐겨 먹었다는 승기악탕이라는 요리가 있는데요, 도미와 소고기를 채소와 함께 육수에 끓여서 먹는 일종의 도미 전골 요리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맛있는지 정자에서 여인들과 풍악을 울리며 노는 것보다 더 좋다고 해서 요리 이름이 이길 승(勝) 자를 써서 승기악탕(勝妓樂湯)이 됐는데요, 잘 지은 이름 하나가 도미요리의 품격을 한 단계 높여 놓았습니다. 중국의 대표적인 도미 요리로는 여덟 신선이 벌인 잔치라는 팔선 연(八仙宴)에 나오는 도미찜이 있는데요, 여덟 명의 신선이 각자 가지고 있는 보물을 이용해 파도를 타고 바다를 건넜다는 팔선과해(八仙過海)의 전설에 근거해 만든 도미 요리로 꿈보다 해몽이라고 도미를 신선의 보물로 형상화해 놓았는데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차리는 요리라고 합니다.

    최고의 생선으로 받드는 나라, 일본

    우리도 도미를 고급 어종으로 취급하지만 최고의 생선으로 받드는 나라는 일본입니다. 도미를 생선의 제왕이라고 부를 뿐만 아니라 썩어도 준치라는 우리말 속담처럼 일본 역시 썩어도 도미라는 속담이 있는데요, 그런 만큼 옛날 일본에서 도미는 지방 영주들이 대장군인 쇼군에게 상납하는 최고의 공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관혼상제 잔칫상에서 빼놓아서는 안 되는 생선이어서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가정에서는 도미를 장만할 수 없으면 그림이나 도미 모양의 어묵으로 대신 차렸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런 도미였던 만큼 일본의 전통적인 잔칫상에서 도미는 제일 마지막에 차려져 연회의 대미를 장식하는 요리로 쓰였습니다. 도미가 일본에서 얼마나 사랑받는 생선이었는지는 붕어빵의 모델이 된 일본 도미빵의 유래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는데요, 도미빵은 1909년에 도쿄의 한 제과점에서 처음 만들었습니다. 물고기 모양의 빵틀에 달걀과 설탕으로 반죽한 밀가루를 붓고 여기에 단팥으로 만든 소를 넣은 빵을 구워 팔면서 이왕이면 최고급 생선인 도미의 이름을 따서 도미구이, 다이야키(たい燒き)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름 덕분인지 아니면 도미가 진짜 행운의 물고기였기 때문인지 도미빵이 대박 히트 상품이 됐는데요, 평소 비싸서 도미를 잘 먹을 수 없었던 당시 도쿄의 서민들이 도미 대신 도미빵을 먹으면서 실제 도미를 먹는 것처럼 행복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두일미(魚頭一味)의 원조

    도미는 그 자체만으로도 맛있는 생선이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로 맛있는 부위로는 도미 머리를 꼽는데요, 생선은 머리가 맛있다는 어두일미(魚頭一味)라는 말 자체가 도미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조선시대 문헌에 유일하게 머리가 맛있다고 기록된 생선이 도미로 정조 때의 실학자 유득공이 사신을 따라 청나라에 갔을 때 도미의 참맛은 머리에 있다며 자랑한 것을 비롯해 조선 문헌에서는 하나 같이 도미는 머리가 맛있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요, 그 때문에 심지어 도미머리와 가을 아욱국은 조강지처한테도 주지 않고 혼자 먹는다는 말까지 생겼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생선 머리만 따로 떼어서, 그것도 몸통보다 비싸게 파는 생선은 도미머리 정도밖에 없습니다. 물에 만 보리밥에 보리굴비 쭉쭉 찢어서 얹어 드시면 문자 그대로 조기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일품 여름 보양식 민어 찜도 좋겠습니다. 게다가 어두일미의 별미, 도미라면 행운과 행복이 동시에 찾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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