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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팸무스비(Spam Musubi) 스토리
    2021년 NEW FINACE 2021. 11. 8. 10:59

    하와이 소울푸드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후 고향인 하와이를 방문했습니다. 이때 오바마 대통령이 먹은 음식이 미국에서 큰 화제를 모았는데요. 네모나게 뭉친 주먹밥에 스팸 한 조각을 얹은 후 떨어지지 않도록 김으로 감싼 음식, 스팸 무스비(Spam Musubi)였습니다. 스팸 주먹밥 내지는 스팸 초밥인데요. 대다수 미국인들은 듣도 보도 못한 하와이 음식인 스팸 무스비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지만, 하와이에서는 남녀노소가 모두 즐겨먹는 음식입니다. 하와이에서 태어나고 자란 오바마 대통령 역시 어렸을 때부터 먹었던 소울 푸드와 같은 음식이지요.

    특별한 음식 스팸 무스비의 유래

    스팸 무스비는 조금 특별한 음식입니다. 우리나라 부대고기 찌개와 비슷한 미국식 부대고기 주먹밥이기 때문인데요, 하와이에서 왜 생선초밥 대신 이런 부대고기 주먹밥이 생겨났을까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하와이에서 어선은 징발되고 어부는 군에 입대했기 때문에 민간인들은 생선을 거의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와이는 또 美 해군 태평양 함대사령부가 있는 곳이지요. 때문에 햄 통조림인 스팸을 비롯해 엄청난 군수물자가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이때 부대고기인 스팸이 시중에 유통되면서 부족한 생선 대신 넘쳐나는 스팸을 이용해 만든 주먹밥이 바로 스팸 무스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전쟁 중 미군이 있던 곳에는 대부분 부대고기 음식이 생겨났는데요. 주로 스팸을 이용한 음식입니다. 하와이의 스팸 무스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전쟁을 계기로 스팸과 소시지를 넣은 부대찌개가 생겨났고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이 주둔한 오키나와에는 스팸과 두부, 채소를 섞어 볶는 찬 푸루라는 요리가 만들어졌습니다. 이탈리아 크림 스파게티인 까르보나라에도 역시 미군 부대에서 나온 스팸과 베이컨이 들어갔습니다. 미군이 있는 곳에는 왜 이렇게 스팸이 넘쳐나면서 나라마다 독특한 부대고기 음식이 생긴 것일까요? 스팸이 제2차 세계대전 무렵 전 세계의 미군에게 대량으로 보급됐기 때문인데요. 아무리 농업대국인 미국이지만 어떻게 햄 통조림을 무한정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비결은 바로 스팸이라는 브랜드에 감춰져 있습니다. 스팸(SPAM) 상표에는 쉽게 말해 ‘짝퉁 햄’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스팸은 양념으로 가미한 햄(Spiced Ham) 내지는 돼지 어깨살과 햄(Shoulder of Pork And Ham)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브랜드인데요, 순수 햄이 아니라 다른 고기와 첨가물을 섞어서 만들었다는 설명이 포함된 상표입니다.

    스팸의 출시

    스팸은 미국 호멜 식품(Hormel Foods)에서 1937년에 처음 출시했는데요. 호멜 식품은 원래 돼지고기 중에서도 뒷다리살만 골라서 훈제해 숙성시키는, 진짜 수제 햄을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그런데 햄을 대량으로 만들다 보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부산물로 나오는 값싼 돼지고기 어깨살을 처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인데요. 멀쩡한 고기를 그냥 폐기물로 버릴 수는 없었기에 고민 고민하다 만들어낸 것이 바로 소량의 햄에다 돼지 어깨살을 갈아서 전분과 함께 섞어 만든 햄 통조림이었습니다. 비록 부산물로 만든 짝퉁 햄이지만 스팸은 사실 회사와 나라와 인류를 구한 음식입니다. 처음 나왔을 때 시장에서 인기도 높았지만 출시 2년 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스팸은 미군은 물론 구 소련군을 포함한 연합군에게까지 공급됐습니다. 군인뿐만 아니라 연합국 주민에게도 스팸은 구원의 식품이었지요. 전쟁이 나면 배급제도가 시행되는데요. 영국의 경우, 성인 1인당 일주일에 계란 한 개, 고기 540g, 치즈 50g을 배급받았습니다. 평소 같으면 한 끼 먹을 분량이 일주일치 식량이 된 것이지요. 하지만 스팸은 예외였습니다. 대량 생산되는 만큼 배급 품목에서 제외됐기에 군인은 물론이고 영국인들도 스팸을 먹으며 전시 물자 부족을 견디어 냈습니다. 스팸이 이렇게 고마운 음식이었지만 먹다 보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스팸 외에는 먹을 고기가 없다 보니 아침에도 스팸, 점심에도 스팸, 저녁에도 스팸, 스팸이 지겨워진 것이지요. 1945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영국에서는 배급제도가 1954년에야 풀렸습니다. 신선한 고기와 햄을 먹고 싶었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 9년 동안 여전히 통조림 햄인 스팸을 먹어야 했습니다. 스팸이 이제는 지겹다 못해서 조롱의 대상이 됐는데요. 1960년대에 영국 BBC에서 스팸을 소재로 한 인기 코미디 시리즈를 방영했습니다. 모든 음식 메뉴가 스팸으로 만들어진 식당이 등장하고 스팸이라는 단어만 무한 반복해 부르는 스팸 송이 히트를 쳤지요. 인터넷이 등장하기 이전, PC 통신 시절에 한 악플러가 무한 반복되는 스팸 송 가사를 올려 다른 사람의 통신을 방해했는데요. 이때부터 다른 사람의 통신을 방해하는 것을 스팸 통신이라고 부르다가,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쓰레기처럼 쏟아지는 광고성 메일을 스팸 메일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평소 무심코 먹는 스팸 통조림이고, 별생각 없이 사용하는 스팸메일이라는 용어지만 스팸이라는 햄 통조림 하나에 이렇게 미처 몰랐던 뜻밖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스팸이 부대고기로, 또 스팸 메일로 변하는 과정을 보면서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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