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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 최대 자유 무역항, 블라디보스토크2021년 FINANCE 2021. 10. 15. 17:08
19세기 말 동북아시아의 최대 자유무역항으로 부상하던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일 전쟁, 사회주의 혁명과 내전을 거치면서 발전의 가속 기어에 브레이크가 걸렸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잠시 점령했던 일본군은 가져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져가면서 대부분의 산업시설을 파괴해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지요. 하지만 소련 정부는 내전 직후 1923~25년 <재건 3개년 계획>을 통해 이 항구 도시의 부활을 꾀했고 덕분에 1925년 경 블라디보스토크는 소련 항구 중에서 가장 높은 수익을 냈습니다. 2차 세계대전 기간에도 기존의 최대 항구인 무르만스크항구보다 4~5배 많은 수입화물을 유치했습니다.
그러나 블라디보스토크의 발전은 원천적인 한계에 부딪쳤습니다. 냉전으로 인해 한국, 일본, 미국, 유럽 등 전 세계 최대 무역국들과의 교역이 차단됐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모스크바, 페테르부르크에 비해 생활 및 산업 인프라도 부족하고 기후도 열악한 이 도시로 이주하는 러시아인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따라서 소련 정부는 이 지역에 대규모의 교도소를 신설해 죄수들의 강제노역을 개발의 주된 노동력으로 활용했습니다. 그러나 스탈린의 정권 말기인 1952년 1월부터 블라디보스토크가 외국인 출입금지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자유무역항의 역사마저 전면 중단됐습니다. 모든 외국 영사관뿐만 아니라 외국계 어선, 상선 그리고 주요 지방정부 기관들도 철수했지요.
도시가 다시 외국인에게 개방된 것은 폐쇄된 지 무려 40년이 지난 1992년 1월, 소련 붕괴 후 러시아 초대 대통령인 옐친의 대통령령이 발효되면서부터입니다. 1990년대 군수산업이 와해되고 실업자가 대량 발생한 이 도시는 인구마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인구가 1991년 64만 8천 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점차 감소해 2009년에는 57만 8천 명까지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중앙권력의 붕괴로 블라디보스토크는 불법 어획, 러시아산 목재와 일본산 자동차 밀수의 온상으로 전락했습니다. 이때 탄생한 블라디보스토크 마피아는 모스크바 마피아도 함부로 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운 세력으로 성장했지요. 블라디보스톡은 자유무역항이 아니라 자유 밀수 항의 오명을 쓰게 됐습니다.
이 슬픈 역사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은 푸틴 대통령 집권부터입니다. 올리가르히들과 그에 기생한 마피아에 대한 전면전을 벌려 국가 질서와 기강을 세우는 데 성공한 푸틴은, 100달러 이상의 고유가에 힘입은 경제성장을 발판으로 국가의 균형발전 전략을 추진합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포함한 극동 지역은 러시아 전체 원유의 16%, 가스의 20% 등 풍부한 자원과 러시아 전체 영토의 36%나 되는 거대한 영토를 보유하고 있지만 인구는 러시아 전체의 4%, GDP는 5.7%(2014년)에 불과했지요. 이러한 지역 불균형 발전은 러시아 정부에 심각한 경제 안보적 위기감을 조성했습니다. 개방 이후 중국의 막대한 자금과 인력이 집중 투하되면서 중국화 현상을 심각하게 우려하게 되었지요. 또한 그동안 러시아 원유 생산을 주도했던 서시베리아 지역의 원유가 고갈되고 주요 수출대상국이었던 서유럽의 경제 침체와 대 러시아 견제정책까지 겹치면서 러시아는 서쪽에 집중됐던 자원 개발과 수출 노선을 동시베리아와 동북아시아로 전환하게 됩니다.
극동의 중국화 현상을 막고 이곳 자원을 개발해 동북아시아로 수출하기 위해서는 낙후한 자원 및 교통 인프라를 확충하고 배후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를 직감한 푸틴 정부는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극동개발에 나섭니다. 2009년 ‘극동개발 마스터플랜’ 및 ‘2025년 극동 바이칼 지역 경제 사회 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2011년에는 극동 및 바이칼 지역 개발 펀드를 설립해 2015년까지 3조 3천억 루블, 약 117조 원, 2020년에는 9조 루블, 약 320조 원을 극동지역에 투자할 예정입니다. 2012년에는 극동개발부를 만들어 담당 장관을 임명하는 연방정부조직개편까지 단행했지요.
푸틴 정부 극동개발의 핵심 지역이 바로 블라디보스토크입니다. 푸틴은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러시아와 한국, 중국, 일본을 잇는 육해상 통합 물류네트워크를 건설해 러시아의 ‘태평양 시대’를 열어나갈 계획입니다. 이 계획을 만방에 공표하고 그 실현을 가속화하기 위해 러시아 정부는 2012년 아펙 정상회의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기로 결정했지요. 아펙 회의를 준비하면서 블라디보스토크의 인프라 리모델링과 신규 건설에 들어간 비용은 무려 100억 달러입니다. 푸틴 대통령은 전력, 호텔, 연결 다리 등 필수적인 인프라가 거의 백지상태인 루스끼라는 외딴섬을 회의 장소로 골라 밴쿠버 올림픽보다 더 많은 투자를 감행했는데요. 이 섬으로 이어지는 두 개의 다리 건설에만 20억 달러가 들었는데 이 중 루스끼 섬 연륙교는 길이 3,100m, 교각 간 거리 1,104m로 세계에서 가장 긴 사장교로 이 도시 최고의 랜드 마크가 됐습니다.
푸틴 정부의 투자로 도심에 20세기 초 러시아 건축들이 복원되고 21세기형 새로운 건물까지 들어서면서 2015년 4월 30일 블라디보스토크는, 오랜 숙원이었던 자유무역항의 지위까지 되찾게 되는데요. 인구도 2010년부터 다시 늘어나기 시작해 지금은 다시 60만을 넘었지요. 푸틴은 2015년부터 매년 이 도시에서 동방 경제포럼을 개최해 한중일 정상을 초대하고 새로운 동북아 협력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데요. 특히 하이테크 산업이 발전한 한국의 투자 유치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글로벌 정치 경제의 주요 거점인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자유무역항,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기착점이자 다가올 북극항로의 중심 허브로 재도약하며, 한국의 투자를 기다리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대한 한국 정부와 기업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