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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물품 거래 서비스 부상2021년 FINANCE 2021. 10. 14. 23:19
일본에서 전당포가 갑자기 화제가 되었습니다. 온라인 전당포 앱이라 불리는 (주)뱅크의 온라인 전당포 앱 ‘캐시’ 때문입니다. 물건 사진을 찍어서 앱에 올리면, 바로 입금이 되는 조금 신기한 서비스인데요. 2017년 6월에 서비스를 시작했다가 중지하고, 8월에 다시 서비스가 재개된 신생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중견 기업인 DMM에서는 캐시를 만든 ‘뱅크’사를 2017년 10월에 70억엔을 지불하고 사들였습니다. 대체 어떤 앱이길래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는 걸까요?
캐시앱이 전당포 서비스라 불린 이유는 캐시만의 특이한 사업 모델 때문입니다. 앱을 다운받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건 사진을 찍어서 올립니다. 그 사진을 보고 데이터를 이용해 가격이 결정되면, 고객에게 바로 돈이 입금됩니다. 진짜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사이버 머니가 들어오는 거죠. 여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짧으면 몇 초에 불과합니다. 물론 그전에 회원 등록을 먼저 하긴 해야 합니다만, 정말로 빠른 시간이죠. 그 다음 2개월 안에 물건을 회사로 보내던가, 아니면 15퍼센트 이자를 쳐서 되갚으면 됐습니다.
처음 이 앱을 봤을 때 많이 놀랐습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꽤 과감한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였거든요. 미리 돈을 내고 나중에 물건을 받는다. 소비자가 회사에 그렇게 하는 것은 봤지만, 회사가 소비자를 상대로 그렇게 한 건 보지 못했습니다. 진짜 전당포도 물건을 보고 돈을 빌려주지 돈을 먼저 빌려주고 물건을 받지는 않죠. 그래서일까요? 호응도 정말 뜨거웠습니다. 서비스 오픈 이후 서비스 일시 정지까지 걸린 시간은 16시간 34분. 그동안 앱은 29,241회 다운로드 됐고, 72,796 개의 물건이 3억 6천만 엔 이상 금액으로 캐시화 되었습니다.
물론 좋은 반응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순식간에 서비스가 정지되는 것을 보고 이건 애당초 안 되는 사업이라고 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물건이 모두 회사로 온 것도 아닙니다. 10%는 돈만 받아가고 물건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36세의 청년 창업가 미츠모토 유스케 역시 블룸버그와 인터뷰를 하면서 일종의 ‘사회 실험’이었다고 털어놨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 시도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10% 가 물건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은, 90%는 보냈다는 말이니까요. 유스케가 망설였던 것은 정직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비율이 얼마 정도일까 하는 것이었고, 그걸 확인하고 싶어서 앱을 등록했고, 90 % 정도면 충분히 해볼 만 하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2017년 8월, 캐시는 서비스를 정교하게 다듬어 다시 재오픈합니다. 하루에 매입 가능한 금액은 1천만엔, 매입 가능한 상품은 중고 시장에서 잘 팔리는 의류나 스마트폰 등으로 한정했습니다. 물건은 2주 안에 지정된 택배사를 이용해 보내야 합니다. 물건을 안 보내는 10%의 사람들에게는 1차로 사용 정지, 2차로 법적 수단 및 제삼자 신용 회수 기관에 의뢰한다고 합니다. 가격은 다른 중고 시장 매매 가격을 기준으로 자동 설정되며, 회사는 매입한 물건을 팔아서 수익을 얻습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바로 물건을 ‘매입’한다는 겁니다. 이러면 전당포가 아니죠. 맞습니다. 처음에는 전당포 서비스로 알려지긴 했지만, 캐시가 가진 진짜 성격은 ‘즉시 매입 서비스’입니다.
일본에서 이렇게 새로운 중고물품 거래 서비스가 부상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리사이클 통신에 따르면, 일본 중고 시장 규모는 2016년 기준 약 1.6 조 엔에 달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장 규모에 비해 이용자는 한정돼 있었는데요. 2012년 기준으로 봤을 때 중고거래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60%에 달할 정도였으니까요. 왜 그랬을까요?
먼저 모바일과 스마트폰으로 이용하기 어려웠습니다. 온라인 경매는 PC 중심이었고 오프라인 매장은 직접 찾아가거나 업자가 집으로 방문해야만 했죠. 게다가 오프라인 중고 거래는 매입 가격이 굉장히 낮았고, 그나마 합리적인 값을 받을 수 있는 온라인 경매는 ‘경매’ 형식이라 거래가 끝날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물건을 팔기 위해 글을 쓰는 것도 일이죠. 그러다보니 여성 고객들은 중고 거래 서비스 이용을 꺼려했습니다. 2013년에는 이 빈틈을 치고 메루 카리라는 온라인 중고 거래 서비스가 등장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는데요. 메루카리는 모바일에 특화된 중고 거래 서비스입니다. 2017년 12월 전세계 앱 다운로드 수가 1억 건. 하루 출품되는 물건은 100만 건 이상이며 거래 금액은 월간 100억 엔 이상입니다. 중고거래를 원하는 시장이 그만큼 크다는 건데요.
캐시는 여기서 또 빈틈을 찾아냅니다. ‘필요 없는 물건을 간편하게, 제값을 받고 팔고 싶다’는 사람들의 욕구에 ‘좀 더 빠르고 안전하게’ 물건을 팔 수 있는 자사만의 강점을 더해 ‘즉시 매입 서비스’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탄생시킨 건데요. 일본에서 즉시 매입 서비스는 이제 대세가 되었습니다. 앞서 소개한 메루카리 역시 캐시 앱과 비슷한 ‘메루 카리 Now’ 앱을 2017년 11월에 출시했습니다. 야후 옥션은 오프라인 중고 회사들과 제휴를 맺어 장외 매입, 출장 매입을 강화한 ‘카우 마 애니크’란 서비스를 출시했습니다. 모두 캐시 앱 등장으로 인한 변화입니다. 물론 이런 사업 모델이 다른 나라에서도 가능한 지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시장에나 빈틈은 있습니다. 업계 강자가 읽지 못한 소비자의 욕구를 공략한다면 성숙 시장에서도 후발주자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캐시 앱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