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러시아를 감동시킨, 한국 컵라면
    2021년 FINANCE 2021. 10. 14. 18:57

    한국 야쿠르트는 러시아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한국 대표기업입니다. 러시아에서 컵라면을 달라고 하면 한국 야쿠르트의 ‘도시락’을 줄 정도로 인기가 높은데요. 도시락 제품의 러시아 시장 매출액은 약 2,000억 원으로 러시아 전체 라면 시장의 20%, 컵라면 시장 점유율은 60%로 브랜드 이미지면에서도 1위를 차지하고 있죠. 중국이나 베트남의 제품들보다 2배나 비싼 야쿠르트의 라면이 러시아에서 승승장구하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요?

     

    물론 컵라면이 러시아의 문화와 꼭 맞아떨어진 점은 큰 행운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긴 시베리아횡단철도가 있는 러시아에는 장시간의 기차여행이 생활화되어 있는데요. 여기서 뜨거운 물을 부어 바로 먹는 컵라면은 간편식으로 안성맞춤이죠. 러시아에는 주말이면 가족끼리 주말별장인 ‘다차’로 가서 오이, 감자 등 채소를 재배하는 문화가 있는데요. 이때에도 컵라면이 유용합니다. 장기적으로 떠나는 여름휴가 문화,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러시아인의 음주 문화에도 간편하고 얼큰한 한국의 컵라면은 딱 들어맞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운이 유독 한국 야쿠르트에게만 집중된 것은 아니었죠. 야쿠르트는 라면 제조업체로는 삼양, 농심, 빙그레 등에 한참 뒤지는 후발 주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열등의식이 요구르트에게는 오히려 약이 되었지요. 한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요구르트는 해외시장에 사활을 걸어야 했습니다. 1991년 12월 2일, 처음으로 21,000개의 박스를 러시아로 수출한 후 몇 년간 요구르트의 실적은 신통한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기업의 헝그리 정신은 똑같은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러시아의 보따리 상인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지요. 당시 부산항을 드나들던 러시아 보따리 상인들은 공식 수출물량보다 더 많은 물량을 구입하고 있었습니다. 야쿠르트의 네모난 용기는 열차에서 잘 엎어지지 않아 인기가 높았죠. 이 작은 발견에 요구르트는 모든 것을 걸기로 하고 1997년 6월 동토의 땅 블라디보스토크에 현지 사무소를 개설합니다. 이후 과감한 현지 마케팅으로 1996년 2천만 개였던 수출이 1997년에는 1억 1천만 개로 늘어났지요.

     

    그러나 성공은 그리 쉽게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듬해인 1998년 8월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자 요구르트도 심각한 매출 난에 허덕이게 되죠. 월 2백만 달러 이상하던 매출이 8만 달러 대로 급감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체첸전쟁이 발발하고 옐친 대통령의 레임덕까지 더해지면서 러시아 사업환경은 최악으로 치달았지요. 대부분의 외국기업과 투자자들은 사업을 철수하거나 자본을 회수했습니다. 그러나 야쿠르트는 ‘리스크 없는 기회는 없다’는 역발상의 기치 하에 판매망 확대를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합니다.

     

    러시아는 모스크바를 포함한 수도권 인구가 러시아 전체의 70% 이상이고 1인당 연간 식품소비액도 타 지역의 3배 수준인데요. 야쿠르트는 무엇보다 블라디보스토크 등 러시아 동부에 편중된 시장을 수도 모스크바로 확대하는데 총력을 기울입니다. 1999년 모스크바에 사무소를 개설하고 시장조사를 실시해 극동지역은 얼큰하고 매운맛을, 모스크바쪽은 순한 맛을 선호한다는 것을 알아내는데요. 이에 따라 소고기 맛에서 부드럽고 순한 닭고기 맛으로 제품군을 확대했습니다. 실제로 시베리아를 포함한 동부지역 매출의 70%를 소고기맛 제품이, 모스크바를 포함한 서부지역 매출의 70%가 닭고기 맛 제품입니다. 또한 광고비가 가장 비싼 러시아의 대표 중앙방송 ORT에 전국 광고를 시작했습니다. 러시아 소비자들이 광고, 특히 비싼 TV 채널 광고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를 적극 반영한 것입니다. 그 결과 1년 후인 2000년부터 매출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비합리적이고 비합법적인 방법이 최선이다’라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은 러시아 법망을 벗어나는 ‘관계’에만 의존하다가 끝내는 손해를 보고 쫓겨나는 경우가 많은데요. 야쿠르트도 사업 초기에 이러한 상황에 직면합니다. L/C개설 등의 정상적인 상거래가 형성되지 못하고 중간상인의 신용을 바탕으로 현금 중심 거래에 100% 의존했지요. 그러나 야쿠르트는 거래선 이탈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1998년부터 블라디보스톡에 현지 판매와 수입을 수행하는 거래인을 지명합니다. 그 결과 오히려 매출이 증가하고 극동지역의 판매채널이 확고하게 정립됐지요. 정도경영의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모스크바 진출에 성공한 후에는 바이어가 판매대금 입금을 거부하여 미수금이 한없이 불어나 사업을 접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이때에도 야쿠르트는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과감하게 거래선을 교체합니다.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과감하게 정상적인 상거래 조건과 건강한 파트너를 갖추어 장기적인 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야쿠르트는 바른 길을 걷겠다는 정도경영으로 더욱 우뚝 섰는데요. 2004년과 2010년에는 러시아 현지에 2개의 생산 공장까지 세워 연간 3억 5천만 개의 라면 생산 시설을 갖추었습니다. 한국 식품기업으로서 유일하게 제품 생산과 공급, 판매를 연결한 체계를 구축한 것이지요. 야쿠르트는 이렇게 러시아 소비자에게 신뢰를 얻어 지금까지도 러시아 컵라면 업계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BRICs 국가의 1인당 GDP(7250달러)를 평균 2배나 상회하는 인구 1억 4,500만 명의 러시아는 유럽에서 가장 큰 소비 시장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린 요구르트의 성공 비결을 발판으로 이 매력적인 시장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시는 건 어떨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