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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갈의 작품 이야기
    2021년 FINANCE 2021. 10. 14. 14:18

    말레비치와 함께 러시아 혁명에 동참했던 또 다른 러시아 화가, 샤갈의 작품에 보이는 막시 말 리즘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영국, 캐나다, 프랑스, 브라질 등 11개국에서 운영되는 세계적인 문화 포털 '블루인 아트인포 bluoinartinfo'에는 세계 100대 화가가 선정되어 있는데요, 이 중 바실리 칸딘스키(38위), 마르크 로스코(15위)를 제치고 러시아 출신 중에서 유일하게 세계 10대 화가에 포함된 작가가 마르크 샤갈입니다. 샤갈의 작품은 1963년에서 2010년까지 글로벌 경매에서 무려 12,191개의 작품이 팔려 피카소, 앤디 워홀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이 팔린 작품이기도 한데요.

     

    특히 샤갈의 ‘동물들과 음악’은 2010년 홍콩에서 열린 서울옥션에서 3,2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되어 아시아 시장에서 팔린 역대 서양 작품 중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입니다. 유대계 러시아인의 작품이 왜 이리도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인기를 누리는 것일까요? 그리고 미술사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미술 애호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읽어봄직한 E.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는 샤갈에 대한 단 8줄의 짧은 언급이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20세기 초 소박하고 때 묻지 않은 것을 추구하는 이상한 부류의 미술가들 중에서도 직접 소박한 생활을 체험해 더욱 경쟁력 있는 화가 중에 한 사람이 샤갈이다. 그는 현대 미술의 여러 가지 실험을 알고 있었지만 그로 인해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샤갈의 그림들은 민속 미술의 묘미와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한 경이감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세기 초에 유럽 미술에는 왜 소박함을 추구하는 이상한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했을까요? 그것은 <검은 사각형>을 그린 말레비치와 같이 그림의 대상이 되었던 현실에 대한 부정에서 출발합니다. 19세기 말과 1차 대전에 이르는 기간은 모든 것이 끝나버릴 것이라는 세기말적인 공포와 인간의 온갖 추악함을 드러낸 전쟁으로 인해 지식인들 사이에는 현실 자체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가 팽배했지요. 화가들에게도 그림의 대상으로서의 현실은 추악하고 부정적인 존재였는데요. 게다가 19세기 말 사진 기술의 발달로 눈앞의 현실을 재현하는 것은 더 이상 화가의 전유물이 아니게 됩니다. 한마디로 대상의 재현은 추악할 뿐만 아니라 무의미하게 된 것이지요.

     

    이제 진정한 화가라면 이 추악하고 무의미한 대상을 재현하는 대신 새로운 무언가를 스스로 만들어 내어야 했는데요, 그들은 이를 ‘진정한 창조’라고 불렀습니다. 먼저 대상에 대한 관심을 접는 동시에 원근법과 같은 기존의 방식도 버리게 되지요. 피카소의 큐비즘,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마티스의 야수파는 이렇게 등장합니다. 그들은 대상 자체보다는 대상을 구성하는 기하학적 형태과 색에 더 관심을 가지거나 아예 대상 자체를 지워버리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애썼지요. 이들은 새로운 대상보다는 주로 새로운 기법을 발견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일부 화가들은 새로운 기법과 동시에 기존의 대상을 대신하는 새로운 대상을 찾기 시작했는데요, 남태평양의 원주민을 그린 고갱, 원시 정글의 맹수에 집착한 루소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지요. 곰브리치는 이들을 '소박함을 추구하는 이상한 부류'라고 분류한 것입니다. 그에게 피카소의 큐비즘의 영향을 받은 동시에, 유럽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의 마을 비쩹스크와 그 마을 사람들을 반복해서 그리는 러시아 화가 샤갈이 같은 부류로 보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지요. 실제로 샤갈은 20대 초반에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피카소를 직접 만났고 또 직접 자신의 그림은 다른 세계로 가는 창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곰브리치의 이런 평가는, 한편으로는 러시아를 유럽의 먼 변방으로 보는 지극히 서구 중심의 사고에서 온 것이기도 합니다. 특히 냉전의 시대를 거치면서 러시아에 대한 인지적 거리감이 더욱 커진 오스트리아인 곰브리치에게 러시아의 변방 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나 샤갈은 현대 문명의 세계를 벗어난 먼 이국의 소박한 인간, 혹은 어린 시절의 소박한 기억을 그린 작가가 결코 아닙니다. 비쩹스크의 사람들도 그의 아내 벨라도 모두 러시아인 샤갈에게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실의 인간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샤갈의 그림이 근본적으로 피카소와 마티스 같은 실험가들과도, 소박함을 추구한 원시 주의자 루소나 고갱과도 구별되는 이유이지요.

     

    샤갈이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던 1958년 2월 시카고의 한 강연에서 '당신은 문득 떠오른 꿈을 그리는가? 당신은 꿈을 그대로 재현해 내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꿈이 아니라 삶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다시 질문자가 ‘당신의 꿈은 당신의 그림에 나타난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가?’라고 되묻자 샤갈은 단호하게 ‘나는 꿈을 꾸지 않는다.’라고 대답합니다.

     

    샤갈이 동시대의 현대 작가들과는 달리 현실을 그린 것이라면 그의 그림 속 주인공들의 비현실적인 공중부양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심지어 샤갈은 스스로 자신은 1908년부터 초현실주의를 작품에 반영했다고 했는데요. 이는 꿈이 아니라 현실의 삶을 그렸다고 하는 그의 주장과 모순되는 것은 아닐까요? 다음 시간에는 꿈과 몽상, 동심의 작가로만 알려져 있는 샤갈의 비행하는 피사체들과 초현실주의가 어떻게 그의 현실주의와 만나는지, 그 속에서 러시아인의 막시 말 리즘은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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