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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문학작품 닥터지바고 이야기
    2021년 FINANCE 2021. 10. 14. 12:59

    러시아 문학작품에서 주인공을 묘사할 때 광활한 자연 풍경이 등장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유명한 <닥터 지바고>의 시작 부분에서도 주인공은 난데없이 주변 풍경에 빠져들지요.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어린 소년 지바고는'고개를 들어 황량한 가을 풍경과 수도원의 둥근 지붕을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데이비드 린 감독이 1965년에 만든 영화에서 이 장면은 유명한 라라의 테마 'Somewhere My Love'와 어우러져 더욱 황량하고 쓸쓸한 정취를 더해 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로 이 영화를 통해 닥터 지바고를 접했고 라라의 테마 음악, 노란 꽃물결, 시베리아의 설원, 그리고 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너무나 슬프지만 그러나 너무나 아름다운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을 겁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콰이강의 다리'의 감독으로도 유명한 세계적인 명감독 데이비드 린은 1966년 이 영화로 아카데미상 6개 부문을 휩쓸었지요. 특히 이 영화에서 지바고의 아내 '토냐'의 역할을 한 여배우가 찰리 채플린의 딸 제랄딘 채플린이라는 것도 세계 영화팬들에게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 영화의 백미는 보리스 파스테르낙의 원작 소설이 가지는 서사적 구성과 서정적 문체를 씨줄과 날줄로 제대로 엮고 여기에 아름다운 영상미와 음악까지 얹어 세계 영화 사상 불멸의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는 데 있는데요.

     

    그럼 지금부터 <닥터 지바고>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실까요? 어머니의 장례식 이후 고아가 된 지바고는 양부모의 따뜻한 양육으로 전도유망한 의사이자 시인으로 훌륭하게 자라, 이제 양부모의 딸 토냐와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1906년 1월의 겨울날 그로 메코 교수와 자살을 시도한 여인을 치료하러 갔다가 여인의 딸 라라와 코마 롭스 키를 처음으로 만납니다. 이때 라라는 지바고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데요, 17살에 불과한 라라를 성적 노리개로 만들어버린 파렴치한 중년의 변호사 코마 롭스 키는 사실 지바고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몰았고 유산마저 가로챈 사람이었죠. 이렇게 지바고와 라라의 우연한 만남은 공통된 악연에서 시작됩니다.

     

    그로부터 5년 뒤인 1911년 지바고는 크리스마스 무도회에서 코마 롭스 키를 향해 총을 발사하는 라라를 목격하게 되는데요, 그러나 이때까지는 두 사람의 만남이라기보다는 지바고가 라라를 구경하는 것이었고 라라는 지바고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지요. 두 사람의 제대로 된 만남이 시작된 것은 1914년 1차 대전의 전선 한 복판입니다. 지바고는 군의관으로, 라라는 출전한 남편 파샤 안티포프의 행방을 찾아 온 간호사로 야전병원에서 함께 일하게 되는데요, 서로에 대한 사랑이 서서히 싹트지만 그 감정을 제대로 확인하기도 전에 1917년 혁명이 발발하고 전쟁도 마무리되어 두 사람은 각각 집으로 떠나야 할 때가 다가옵니다. 라라가 떠나기 일주일 전 마침내 지바고는 라라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데요, 감정을 애써 억누르려는 라라가 다리미로 옷감을 태우는 장면이 압권이지요.

     

    이렇게 헤어진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것은 다시 몇 년이 지난 뒤입니다. 혁명으로 모스크바에 살기가 힘들어진 지바고의 가족은 아내 토냐의 집안 영지인 우랄의 바리키노로 이주하게 되는데요. 우연히도 바리키노 가까이에 라라의 고향인 유리아틴이 있었습니다. 그곳 도서관에서 다시 재회한 두 사람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운명적인 사랑에 완전히 몸을 맡기게 되고 지바고는 아내 토냐에 대한 양심의 가책에 괴로워합니다.

     

    어느 날 마침내 지바고는 눈물로 라라에게 이별을 고하고 바리키노로 가지만 가는 길에 이내 후회하고 라라를 향해 말을 돌립니다. 그러나 이때 가혹한 운명의 손길이 지바고를 라라와 토냐 모두에게서 앗아가는데요, 의사가 필요했던 적군 빨치산이 라라에게 돌아가는 지바고를 강제로 납치해갑니다.

     

    그로부터 18개월의 시간이 지난 어느 한 겨울날 지바고는 마침내 빨치산 부대에서 탈영하여 천신만고 끝에 유리아틴으로 돌아옵니다. 둘째 아이를 낳은 토냐는 이미 모스크바로 떠나고 라라만 끝까지 지바고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러나 귀족 출신의 탈영병이자 불온한 시인인 지바고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제 숙청의 대상이 된 남편을 둔 라라에게는 파멸의 순간이 점점 다가옵니다. 그 파멸이 가까울수록 두 사람의 사랑은 더욱더 깊어갑니다. 원작 소설에는 '파멸이 운명 지워진 두 사람에게 마치 영원의 입김처럼 정열의 입김이 날아들었다.'라고 묘사되지요.

     

    결국 검거의 압박이 목전까지 다가오고 두 사람은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시간을 외떨어진 바리키노에서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마지막 시간을 보낼 바리키노를 향해 시베리아의 설원을 달리는 두 연인의 밝은 웃음소리가 주는 비극적 여운에 관객들의 가슴이 미어지지요.

     

    두 사람의 마지막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다가옵니다. 겨우 13일이 지난 날 불쑥 두 사람 앞에 코마 롭스 키가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라라의 남편이 처형당해서 이제 라라의 생명도 위험하다며 자기와 함께 극동으로 떠나자고 제안하지요. 마침내 지바고는 라라를 떠나보내기로 결심합니다. 영화에서 뒤따라가겠다고 거짓말을 한 지바고가 설원을 달리는 라라의 마차를 한없이 바라보는 모습은 라라의 테마음악과 함께 많은 영화팬들의 가슴에 오랜 여운을 남겼는데요. 결국 이렇게 헤어진 후 두 사람은 살아서는 다시는 만나지 못합니다. 파스테르낙은 지바고와 라라의 이야기로 무엇을 전하고 싶었을까요? 역사의 격동 속에 희생된 비운의 사랑을 찬미하는 것일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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