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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프링롤 춘권의 유래
    2021년 FINANCE 2021. 10. 11. 09:12

    영국의 시인 셸리(P.B. Shelley)가 ‘서풍에 부치는 노래(Ode to the West Wind)’에서 이렇게 노래했지요. “예언의 나팔이 되어다오! 오 바람이여 겨울이 오면 봄이 어찌 멀다 할 수 있으랴” 그렇습니다. 19세기 낭만주의를 대표한 시인, 셸리가 유럽의 겨울바람이 불어올 때 벌써 봄기운을 느꼈던 것처럼, 시인이 아닌 우리는 맛있는 음식으로 미리 봄기운을 맛보면 어떨까요? 봄맞이 음식으로는 춘권이라고도 알려진 스프링 롤을 잡수시면 좋습니다. 스프링 롤은 밀이나 쌀로 만든 전병에다 각종 채소와 당면, 그리고 소고기와 새우 등의 해산물을 넣고 쌈을 싸서 먹거나 튀겨서 먹는데요. ‘봄기운을 싸서 먹었다’는 뜻에서 비롯된 음식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봄이라는 뜻의 스프링(Spring)과 돌돌 말아서 쌌다는 의미의 롤(Roll)이 합쳐져서 ‘스프링 롤’이 됐는데, 춘권(春卷)을 그대로 영어로 옮겨 번역한 것입니다.

     

    대부분 스프링 롤을 그저 홍콩과 중국에서 발달한 딤섬, 내지는 월남 쌈으로 대표되는 동남아 음식 정도로 알고 있지만, 따져보면 아시아 각국에 모두 흔적이 있는 음식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인 1세기 무렵부터 발달한 스프링 롤은 봄의 시작이라는 입춘 이후에 들판에서 갓 돋아나기 시작한 봄나물의 새싹을 캐어 먹었던 것이 기원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새싹을 먹으면서 봄을 맞이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바로 겨우내 부족했던 신선한 채소를 먹으며 건강을 챙기고 활기를 되찾자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옛사람들은 새봄에 돋아난 채소를 먹으면 오장(五臟)의 기운이 원활하게 돌아서 몸에 남은 찬 기운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나쁜 기운을 쫓아낸다고 믿었습니다. 현대적으로 해석하자면 신선한 채소 로체 내 장기의 운동을 촉진해 건강을 추구하려는 의미였다고 풀이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봄맞이 채소로 주로 어떤 새싹을 먹었을까요? 흔히 생각하는 냉이와 씀바귀는 봄이 한참 일 때 먹는 나물이고요, 봄이 시작될 무렵에는 나라와 시대에 따라 종류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부추, 달래, 미나리, 마늘, 파 등 다섯 가지 매운맛이 나는 채소의 새싹을 먹었는데요. 지금은 특별할 것도 없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이들 채소는 보통 식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불경에서는 수행하는 사람들이 삼가야 할 음식으로 이들 매운맛이 나는 다섯 채소, 즉 오신채를 기피 식품으로 꼽습니다. 수행에 방해기 되기 때문이라는데요, 뒤집어 말하자면 수행자가 아닌 일반인에게는 힘을 북돋는 강장식품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성경에서도 마늘, 부추, 양파에 더해 오이와 수박은 출애굽 이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먹었던 채소였는데요, 파라오가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였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힘을 내라며 특별히 지급했던 특식이었습니다. 힘을 솟게 만드는 채소였기 때문이지요. 다섯 가지 채소를 먹었던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동양의 음양오행 사상과 관련이 있는데요, 동서남북의 사방과 중앙을 합친 오방(五方) 속에서는 우주와 자연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조화를 이루며 균형을 이룬다고 합니다.

     

    때문에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됐다는 의학서인 황제내경(黃帝內經)에는 음식도 다섯 가지 색과 다섯 가지 맛이 조화를 이루도록 먹는 것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양생의 비법이라고 했습니다. 즉, 새봄의 정기를 받고 돋아난 채소의 새싹을 다섯 가지로 맞춰서 균형 있게 먹으면 오장을 보호해 한 해를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봄채소의 새싹을 밀전병과 쌀전병에 싸서 스프링 롤로 만들었을까요? 그리고 누가 여기에다 봄을 싸서 먹는다는 낭만적인 이름을 지어놓았을까요? 오신채, 즉 다섯 가지 매운 채소가 스프링 롤로 발달한 것은 만두와 국수 등 밀가루 음식이 고도로 발달하기 시작한 12세기 중국 송나라 무렵입니다.

     

    봄맞이 채소를 당시에는 고급 식재료였던 밀가루 전병에 싸 먹으면서 화려한 요리로 변신한 것인데요, 송나라 궁중에서는 봄이 오면 스프링 롤인 춘권을 빚어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그 비용이 일만 냥을 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송나라 이후 봄채소 이외에도 각종 고기와 갖가지 해산물이 더해졌습니다. 더불어 이름만큼은 더욱 시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봄에 먹는 다섯 가지 채소라는 오신채에서 이제는 봄을 깨물어 먹는다는 뜻의 교춘(咬春)으로, 그리고 봄을 돌돌 말았다는 의미인 춘권(春卷)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 춘권이 동남아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스프링 롤이 됐습니다. 하지만 스프링 롤의 원형인 오신채는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입춘 음식으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었습니다. 스프링 롤은 그저 맛으로만 먹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새봄을 맞아 건강을 기원하고 활력을 되찾자는 옛사람의 다짐이 담긴 음식이었는데요, 혹시 새해 결심이 무디어졌다면 스프링 롤을 드시면서, 다시 한 번 신년 계획의 실천을 다짐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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