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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울푸드 치킨
    2021년 FINANCE 2021. 10. 11. 08:33

    영화 <집으로>의 꼬마 소년이 할머니에게 먹고 싶다고 하는 음식, 프라이드치킨은 바로 대표적인 소울푸드입니다. 어린이들이 즐겨 먹는 간식으로, 어른들의 맥주 안주로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한 집 건너 또 한 집 치킨집이 생겼을 정도로 인기가 높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좋아하는 프라이드치킨은 한국 어머니들의 웃음이 스며들기 이전, 원래 가난한 미국 흑인 어머니의 눈물로 튀겨냈던 요리였습니다. 프라이드치킨의 내력을 알고 보면 역사적 배경이 꽤나 복잡합니다. 상식적으로 서로 연결될 것 같지 않은 사실들이 얽히고설키며 만들어진 음식인데요.

     

    프라이드치킨은 햄버거와 함께 전 세계로 퍼진 미국을 대표하는 패스트푸드입니다만 원래 뿌리는 스코틀랜드 귀족이 먹었던 음식을 미국 남부의 흑인 노예들이 발전시킨 것입니다. 미국의 노예제도, 인종차별, 유럽 치킨 요리의 역사, 미국 남부의 산업 발달 역사 등이 모두 녹아서 프라이드치킨으로 발전했습니다.

     

    미국 닭고기 요리는 유럽, 특히 영국의 전통 요리법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잉글랜드 출신들이 주로 정착한 미국 북동부에서는 그들의 전통적인 닭고기 요리법인 통닭구이, 즉 로스트 치킨을 주로 먹었습니다. 반면에 스코트랜드 출신들이 자리를 잡아 농사를 지었던 남부에서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 후 닭고기를 튀기는 프라이드치킨이 발달했습니다. 그리고 흑인 노예들이 들어오면서 주방 요리는 그들의 담당이 됐습니다.

     

    흑인노예들은 주인인 백인 농장주의 요리법에 따라서 닭고기를 튀겼고, 주인이 먹지 않고 버리는 닭 날개, 다리, 목 등을 모아서 튀긴 후 집으로 가져가 아이들에게 먹였습니다. 당시 흑인노예들이 자유롭게 먹을 수 있었던 고기는 닭고기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농장은 물론이고 자기 소유의 작물조차 없었던 흑인 노예들은 소나 돼지를 마음 놓고 기를 수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닭만큼은 농장주인의 허락을 받아 키울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쉬는 날이면 흑인들은 자신이 집에서 키우던 닭을 잡아, 정성을 다해 튀긴 후 가족들과 함께 프라이드치킨을 만들어 먹었던 거죠. 그러니까 통닭구이인 로스트 치킨은 백인들의 요리, 닭튀김인 프라이드치킨은 흑인들의 요리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흑인들이 프라이드치킨을 발전시킨 배경으로는 튀김요리의 특성을 꼽기도 합니다. 기름에 튀기면 식재료의 독특한 냄새를 없앨 수 있습니다. 고급이 아닌 냄새 나는 저급 식재료를 조리해도 문제가 없고, 또 칼로리가 높아 뱃속이 든든해지기 때문에 주로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했던 흑인 노동자들이 좋아했습니다.

     

    흑인들의 소울푸드인 프라이드치킨이 미국 남부에서 발달한 또 다른 이유는 인종차별입니다. 남북전쟁 후 노예제도가 폐지된 이후에도 흑인과 백인 간 인종차별은 지속됐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흑인들조차도 인종차별 때문에 레스토랑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백인전용 식당에 흑인들은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주말이 되면 집에서 닭고기를 정성껏 튀겨 야외로 나들이를 갔습니다. 흑인 전용 식당이 발달한 이후에도 식당의 주요 메뉴는 평소에 즐겨 먹었던 프라이드치킨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미국 남부는 날씨가 덥기 때문에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볶거나 튀기는 요리가 많았는데 프라이드치킨이 발달한 또 다른 배경이기도 합니다.

     

    또 한 가지, 미국 남부에서 튀긴 닭고기인 프라이드치킨이 발달한 배경에는 닭과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돼지가 결정적인 작용을 합니다. 남부에 대규모 농장이 발달하면서 농업 부산물이 다량으로 생겨납니다. 덕분에 돼지 사료가 풍부해졌고 그 결과 19세기 들어서면서 양돈업이 크게 발달합니다. 그리고 라드(Lard)라고 부르는 돼지기름이 대량으로 생산됩니다.

     

    전통적인 유럽의 튀김요리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하게 붓고 지지거나 튀기는 방식이었습니다. 과일이나 야채튀김, 쇠고기 튀김과 같은 요리인데요. 이런 튀김요리를 프리터라고 합니다. 로마시대부터 발달했던 조리법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남부에서 양돈업의 발달로 기름이 풍부해지면서 끓는 기름에 음식재료를 푹 담갔다가 순간적으로 고온에 튀겨내는 딥 프라이드 방식이 유행을 합니다. 지금 우리가 먹는 프라이드치킨을 튀기는 방법입니다. 딥 프라이드 방식이 도입되면서 닭고기를 튀길 때도 주로 어린 닭인 영계를 재료로 사용합니다. 고온에서 순간적으로 닭고기를 튀기려면 어린 닭인 영계가 좋다고 합니다. 고기 맛도 그만큼 부드럽고 연해서 가난한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들도 즐겨먹는 음식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한국인의 정서로는 공감이 쉽지 않을 수 있지만 프라이드치킨은 바로 우리의 구수한 된장찌개 같은 미국 흑인들의 소울푸드였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정성을 다해 준비했던 요리로 누군가에게는 그리운 맛, 영혼을 채우는 맛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바쁘다는 핑계로 진짜 소중한 것, 그리운 것을 잊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 각자의 소울푸드를 하나씩 준비해서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보는 건 어떨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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