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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고기 먹는 날
    2021년 FINANCE 2021. 10. 11. 08:25

    한때 유행했던 TV 개그 코너에서는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 묵겠지’라고 하던데요. 여러분은 주로 어떨 때 소고기를 드십니까? 나라마다 상황에 따라 소고기를 먹는 조건이 달랐는데요. 예전 일본에서는 아플 때 소고기를 먹었습니다. 2006년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테러를 당해 입원한 적이 있었지요. 이때 일본 내각 관방장관이던 아베 신조 현 총리가 고베산 소고기를 위문품으로 보내왔습니다. 왜 뜬금없이 소고기를 위문 선물로 보냈을까요? 함께 보낸 편지에 “하루빨리 회복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일본의 관습에 따라 편지와 선물을 전한다”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전 일본 사람들은 아플 때 소고기를 먹었습니다. 때문에 일본에서는 지금도 환자를 문병할 때 소고기를 선물하는 풍습이 남아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왜 소고기로 환자를 위문했을까요? 예전에는 소고기가 음식이 아니라 약이었기 때문인데요. 근세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인들은 병이 났을 때 소고기를 먹었고 심지어 만병통치약으로까지 여겼습니다. 일본에서 소고기가 약이 된 이유가 있는데요. 맛은 있어도 먹을 수는 없었던 ‘금지된 욕망’, 먹고 싶지만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되는 ‘금단의 식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살생을 금지한 불교의 영향 등으로 7세기 무렵 육식 금지령이 선포된 이후, 무려 1,200년 동안 일본 사람들은 고기를 제대로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병을 치료한다는 핑계로 소고기를 먹었던 것이죠.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조리하지는 못했고, 약이라는 명목으로 ‘복용’을 했는데요, 소고기에 각종 양념을 한 후 동그랗게 빚어서 환약으로 만들어 우육 환(牛肉丸)이라는 이름으로 먹었습니다. 약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소고기 완자나 서양의 미트 볼(meat ball)과 크게 다르지 않지요. 육포로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요, 이 경우에도 육포가 아니라 말린 소고기 환약이라는 뜻에서 간우환(干牛丸)이라는 이름으로 처방했습니다.

     

    일본에서 육식 금지령이 해제됐을 때 도쿄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소고기 전골 전문점의 광고에도 맛있는 요리를 자랑한 것이 아니라 ‘소고기는 보양식품’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을 보면, 당시 일본인에게 소고기가 어떤 의미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영국인에게는 소고기가 자부심이었습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소고기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로스트비프와 여기에 곁들여 먹는 요크셔푸딩을 꼽을 정도니까요. 아예 프랑스에서는 영국인을 로스비프(Rosbif)라고 부르는데요, 구운 소고기라는 뜻으로 앙숙관계인 프랑스인들이 영국인을 경멸해서 부르는 말입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뭐라고 하건 영국인은 로스트비프(Roasted Beef)를 영국의 대표 요리, 애국심의 상징으로 삼았는데요. 도대체 소고기 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소고기는 예전 유럽에서도 상류층의 음식이었을 뿐, 평민은 감히 먹을 수 없는 고기였습니다. 영어 단어에 그 흔적이 남았는데요, 영어로 암소는 Cow, 수소는 Ox, 돼지는 Pig지요. 어원이 모두 고대 영어입니다. 하지만 소고기인 Beef, 돼지고기 Pork, 그리고 훈제한 Bacon은 어원이 고대 프랑스어입니다. 가축은 영어, 고기는 불어가 어원인데요, 12세기 프랑스가 영국을 다스린 노르만 정복 시절, 피지배 민족인 영국인은 가축을 키웠고, 고기는 지배계급인 프랑스 귀족이 먹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런데 프랑스 사람은 로스트비프를 조롱하는데 영국인은 왜 자부심을 갖게 됐을까요? 노르만 정복 때의 영향인지, 영국은 목축기술이 발달했는데요, 때문에 현재 유명한 육우 품종 중에는 영국산이 많습니다. 이렇게 소를 많이 키운 데다 산업혁명으로 경제가 발달하면서 영국에서는 보통 사람도 주말이면 소고기 구이, 로스트 비프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반면 이 무렵 프랑스는 혁명이 일어날 정도로 빈부격차가 심했지요. 덕분에 영국인들은 “우리는 소고기를 먹는 국민”이라는 자부심으로 노래까지 지어서 불렀고, 프랑스에서는 “소고기나 구워 먹는 것들”이라고 멸시했습니다. 인생사 새옹지마가 따로 없습니다.

     

    그렇다면 한국과 중국은 어땠을까요? 값이 비쌌으니 역시 아무나 소고기를 먹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처럼 도축을 엄하게 막았던 것도 아니고, 농사철에는 소를 잡지 못하게 했지만 잘 지켜지지도 않았습니다. 때문에 비교적 자유롭게 소고기를 먹었는데 그러다 보니 과식이 문제가 됐습니다. 중국인들은 소갈비 탕수육부터 소고기 국수인 우육면(牛肉麵)까지 다양한 소고기 요리를 즐기는데요, 심지어 당나라의 시성, 두보는 소고기 때문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호남성 동정호에 머물던 두보가 홍수로 고립이 돼서 며칠을 굶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현령이 존경하는 시인에게 소고기와 술을 보냈는데요. 그만 빈속에 소고기를 너무 많이 구워 먹었기 때문인지 그날 밤으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역사책인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 모두 두보의 사망 원인으로 소고기 구이를 꼽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기분 좋게 소고기를 먹은 사람은 바로 우리 조상님이었습니다. 겨울이 되면 선비들은 난로회(煖爐會)라는 소고기 숯불구이를 먹는 모임까지 만들면서 풍류를 즐겼기 때문인데요. 맛있는 음식이지만 적당히 절제할 줄도 알았습니다. 이태백에 버금갔다는 고려 제일의 시인, 이규보는 드디어 “소고기를 끊었다(斷牛肉)”**라는 시까지 남겼습니다. 식욕 때문에 유용한 자원을 먹어치우는 탐욕을 다스리고, 맛있는 음식을 절제한 자신의 의지가 자랑스러웠는지, 요즘 금주나 금연에 성공한 것처럼 기뻐하며 지은 시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소고기를 어떻게 잡수시나요? 소고기를 약이라는 핑계로 먹거나, 과식을 해서 체하는 것도 문제지만 값비싼 소고기를 먹는다고 자부심을 가질 것도 없고, 졸부처럼 조롱의 대상이 될 것도 아니겠지요. 그저 먹고 싶은 대로 즐기다가 지나치다 싶으면 스스로 절제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남보다 조금 더 잘 살겠다고 안달하면 뭐하겠습니까. 그저 기분 좋게 소고기 사 먹는 게 최고의 즐거움이 아닐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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