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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가 사랑하는 족발 요리
    2021년 FINANCE 2021. 10. 11. 07:48

    독일에 도착하면 남부 바바리아 지방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슈바인 학세(Schwein Haxe)를 먹는 것이 어떨까요? 본고장 맥주나 독일 소주, 슈납스와 곁들여 먹으면 딱 좋은데요, 슈바인 학세는 독일식 족발 요리로 껍질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면서 야들야들해서 맛이 특별합니다. 구이보다 찜이 좋다면 맥주에 푹 삶은 아이스바인(Eisbein)을 먹어도 좋습니다. 슈바인 학세가 구운 족발이라면 아이스바인은 족발 찜인데요, 지역에 따라 구워 먹고 삶아먹고, 독일인의 족발 사랑이 한국인 못지않습니다.

     

    파리에서라면 문자 그대로 돼지 발이라는 뜻의 프랑스 족발, 피에 드 코숑을 추천합니다. 소스를 곁들여 구운 돼지 족발 구이인데요, 기름지고 부드러운 맛으로 파리지엥의 입맛을 사로잡습니다. 이탈리아에도 족발이 있는데요, 이탈리아 족발, 잠포네(Zampone)를 드시려면 반드시 새해에 드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새해 첫날 떡국을 먹는 것처럼 이탈리아에서는 족발을 먹으며 한 해를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스페인(manita de cerdo), 체코(Koleno), 폴란드(Golonka)도 족발 요리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유럽 족발은 먹을 만큼 먹었으니 이제는 아시아의 족발을 맛보러 가실까요?

     

    중국의 족발 요리, 주티(猪蹄)는 종류가 너무나 다양해서 특별히 어떤 족발 요리가 더 맛있는지 추천도 못할 정도입니다. 특히 소스를 발라 먹음직스럽게 구운상하이식 돼지족발 요리인 홍샤오주티가 유명합니다. 태국에 가신다면 족발 덮밥인 카오 카무를 먹으며 남국의 정취를 느껴보는 것도 좋습니다. 족발로 만든 장조림을 먹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필리핀에서는 튀긴 족발 크리스피 파타(crispy pata)가 별미인데요, 마치 씹으면 육즙이 퍼지는 튀김 과자를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돼지족발을 즐겨먹습니다. 돼지 발에 여러 약재를 넣고 장시간 푹 고아서 먹는 족발은 특유의 쫄깃쫄깃한 맛과 풍미가 일품인데요. 옛날 우리 조상들도 돼지족발을 무척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임진왜란 대 선조를 의주까지 모시고 피난을 갔다가 요동으로 건너가 명나라의 구원병을 이끌고 온 사람 중에 이호민이라는 이조좌랑이 있습니다. 족발을 어찌나 좋아했는지 닭발과 돼지족발을 쌓아놓고 먹는다는 시를 남겼습니다. 또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백과사전적 지식을 자랑한 이규경은 오주연 문장 전산고에서 맛있는 음식 중 하나로 돼지족발을 꼽았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모두 족발 사랑이 대단한데요. 왜 이렇게 족발 맛에 푹 빠졌을까요? 다른 부위와는 달리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워 맛이 특별하기도 했겠지만, 사실 사람들은 족발에다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동물이 네발로 걷기 때문에 모든 정기가 발바닥으로 몰린다고 믿었습니다. 돼지 역시 짧은 다리로 땅을 딛고 육중한 몸을 지탱하고 서 있으니 족발이 그만큼 튼튼하고 강해서 맛도 좋을 뿐만 아니라 몸에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돼지는 행운을 상징하는 동물인 만큼 돼지 정기가 모인 족발을 먹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꿈까지 품었습니다. 중국 당나라 때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들은 장원급제를 꿈꾸며 돼지족발을 먹었는데요. 우리 수험생이 시험을 앞두고 합격 엿을 먹는 것과 비슷합니다. 중국말로 합격을 기원하는 풍속과 돼지 족발의 발음이 비슷해서 생긴 민속이지만 근본적으로 족발에 상서로운 기운이 담겨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 족발, 잠포네를 반드시 새해에 먹어야 하는 이유도 족발이 행운의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새해에 잠포네를 콩과 함께 먹는데요, 콩은 동전을 상징하고 족발은 지갑을 뜻한다고 합니다. 일 년 내내 지갑에 돈이 떨어지지 말라는 의미지요. 중국 광둥 지방에서도 새해에 족발을 먹으면 행운이 깃든다고 믿고 있는데요, 혹시 우리나라 족발에도 같은 효력이 있지는 않을까요? 우리나라에서 족발은 아이를 낳은 후 먹는 산후조리 음식이기도 한데요, 예전 할머니들은 산모가 산후 기혈이 부족할 때 돼지 족발을 구해다 푹 고아서 먹였습니다.

     

    옛날에는 좋은 음식이 있으면 나부터 먹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나 조상님께 먼저 바치고 난 후에야 본인이 먹었는데요. 족발 역시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했던 음식입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인 기원전 371년, 초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제나라 국경을 침범했습니다. 놀란 제나라 왕이 조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키로 하고 황금 백 근과 마차 열 대를 예물로 준비했는데요, 재상인 순우곤이 이 모습을 보고는 고개가 젖혀질 정도로 크게 웃다가 그만 갓끈이 끊어졌습니다. 제왕이 웃는 이유를 묻자 순우곤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오늘 아침 대궐로 오는 길에 어느 백성이 돼지족발 하나와 술 한 잔을 제단에 올려놓고 하늘에 소원을 비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풍년이 들어 창고에 곡식이 가득 차게 해 주시고, 아이들은 입신출세하게 해 주시고, 우리 부부 건강하게 백 살까지 살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신이 보기에 하늘에 바치는 제물이라고는 달랑 돼지족발 하나뿐인데 바라는 것은 너무 많았던 것이 떠올라서 웃었습니다” 순우곤의 말을 들은 제왕은 황급히 예물을 늘려 황금 1,000근과 마차 100대를 보내 조나라에 원군을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조나라에서 정병 10만과 전차 천대를 파견하니 소식을 들은 초나라 군사들이 놀라서 밤새 도망갔다고 합니다. 사기 골계 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로, 초라한 음식이라는 뜻의‘돼지족발과 한 잔 술’에 관한 고사인데요, 무명의 백성은 도대체 왜 겨우 돼지족발 하나를 제단에 놓고 소원을 빌다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됐던 것일까요? 혹시 자기 딴에 족발은 동물의 정기가 깃든 음식이고 옛날부터 산해진미로 꼽혔으니 비록 양은 적더라도 그 귀중함에 하늘이 감동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러니 내가 정한 기준이 아닌 상대편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산해진미고, 값이 나가는 좋은 물건이라도 아깝다고 찔끔찔끔 내놓으면 베풀고도 욕을 먹기 마련입니다. 사람 사는 관계에서나, 일을 할 때, 혹은 투자를 할 때도 상대편이, 그리고 시장이 감동하고 감탄하도록 과감하게 베풀면서 전력투구하는 자세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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