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서양 쌀요리의 유래
    2021년 FINANCE 2021. 10. 11. 07:15

    쌀밥은 아시아 사람들의 주식입니다. 하지만 지금 세계적으로 널리 유행하는 쌀밥은 오히려 서양 쌀밥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비빔밥, 중국의 볶음밥도 유명하지만 지구촌 곳곳에서는 이탈리아의 전통음식인 리소토, 스페인의 빠에야와 같은 서양 쌀요리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서양 쌀밥이 밥의 본고장인 아시아까지 침투하고 있는 것이죠. 아시다시피 서양인의 주식은 빵입니다. 그러니까 쌀이 아닌 밀입니다. 그런데 서양 사람들이 언제부터 쌀밥을 먹었던 것일까요? 쌀은 주로 아시아에서 재배해 온 작물이지만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도 쌀을 먹었습니다. 유럽에 처음 쌀을 전한 사람은 동방원정을 다녀온 알렉산더 대왕이었습니다. 이후 고대 그리스, 로마 사람들은 페르시아와 인도로부터 쌀을 수입했습니다. 때문에 쌀값이 무척 비싸서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라 부자들이나 먹는 약으로 쓰였습니다.

     

    1세기 무렵 로마에 살았던 미식가, 가비우스 아피시우스가 남긴 기록에는 양젖으로 끓인 쌀죽을 약으로 먹는다고 적혀 있습니다. 양젖 쌀죽은 조선시대 임금님이 약으로, 또 보양식으로 드셨다는 우유로 끓인 쌀죽인 타락죽과 거의 비슷합니다. 역시 1세기 무렵, 로마의 군인이자 학자였던 플리니우스도 그가 남긴 박물지에다 특이한 약용 식물을 설명하면서 “인도인들은 참깨와 쌀에서 기름을 짠다”라고 적었습니다. 쌀을 곡식이 아닌 약재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쌀밥을 먹기 시작한 것은 중세 무렵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서양 쌀밥이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이탈리아식 볶음밥인, 리소토입니다. 스파게티와, 피자가 이탈리아 남부인 시실리, 나폴리에서 발달한 음식인 반면에 리소토는 북부, 특히 밀라노를 중심으로 발달했습니다. 패션의 본고장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서유럽 도시인 밀라노에서 도대체 왜 쌀밥 요리인 리소토가 발달했을까요? 보통 밀농사를 짓는 유럽의 다른 지역과 달리 밀라노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북부는 주로 벼농사를 짓습니다. 이곳에서 벼농사가 시작된 것은 르네상스 시대 초기인 14세기 무렵입니다.

     

    중세가 끝날 무렵, 인구가 크게 늘며 곡물 수요가 증가하자, 당시 아랍과의 교역으로 부를 쌓았던 베니스 상인들이 막대한 자본을 들여 밀라노 부근의 포강 유역을 개간합니다. 그리고 수량과 일조량이 풍부한 이곳에다 아랍에서 들여온 벼 종자를 심어 농사를 지으면서 큰돈을 벌게 됩니다. 벼농사가 시작되면서 이탈리아 북부에는 당연히 쌀을 이용한 요리가 발달하는데 리소토 역시 그중 하나입니다. 이탈리아어로 쌀이라는 뜻의 리조에서 비롯된 이름인 리조또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아랍의 쌀 요리, 그리고 이웃 스페인의 쌀 요리인 빠에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리조또의 본고장인 밀라노 리소토는 조리법 역시 스페인의 빠에야와 비슷합니다. 밀라노가 16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초반까지 약 170년 동안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을 때,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페인의 빠에야는 어떻게 만들어진 음식일까요? 스페인은 유럽에서 최초로 벼농사를 시작한 나라입니다. 스페인의 발렌시아 지방은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약 700년 동안 아랍계 민족인 무어인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무어인들은 스페인 남부를 통치하면서 고대 로마 때 건설해 놓은 관개시설을 이용해 이곳에서 벼농사를 짓기 시작합니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스페인의 전통 쌀밥 요리인 빠에야는 바로 아랍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발렌시아 지방에서 발달한 음식입니다. 들판에서 일하던 스페인 농부들이 평평한 냄비에다 올리브기름을 붓고, 갓 타작한 쌀과 주변의 들판과 개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토끼고기와 달팽이, 그리고 각종 야채 등을 넣고 볶은 것이 빠에야의 기원입니다. 한국에서 주로 먹는 빠에야는 해산물이 중심이 되는 바르셀로나 빠에야이지만 원조격인 발렌시아 빠에야는 지금도 토끼고기와 달팽이를 주요 재료로 넣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독특하게 토끼고기를 넣은 것일까요? 스페인에는 토끼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스페인을 히스 파니아(Hispania)라고 불렀습니다. 스페인어 나라 이름인 에스파냐(Espa? a)와 라틴계 미국인을 가리키는 히스패닉의 어원이 되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원 학자들은 히스 파니 아가 ‘서쪽 끝에 있는 땅’이라는 뜻과 함께 ‘토끼가 많이 사는 땅’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단어라고 합니다. 그만큼 스페인에 야생 토끼가 많았기 때문에 발렌시아 빠에야에 토끼 고기를 넣은 것이죠. 빠에야는 냄비를 뜻하는 팬(Pan)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냄비에 조리한 쌀밥이라는 의미입니다. 빠에야는 단합의 음식으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우리나라 비빕밥처럼 스페인에서는 대형 냄비에 빠에야를 만들어 먹으며 결속을 다진다고 합니다. 바로 많은 사람의 손이 필요한 벼농사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유럽에 쌀을 전한 것은 아랍입니다. 중동은 밀의 원산지인데다 건조한 지역이기 때문에 벼를 재배하지 않았을 것 같지만 홍수가 잦은 계곡이나 습지를 중심으로 일찍부터 벼농사가 발달했습니다. 때문에 다양한 쌀 요리를 먹었는데요. 지금 리조또나 빠에야의 원형이 되는, 버터를 두르고 쌀을 볶는 형태의 필라프와 같은 아랍식 쌀요리가 페르시아 왕국을 중심으로 발달했습니다. 아랍세계에서 쌀은 천당에서 천사들이 즐겨 먹는다는 음식이었습니다. 이슬람교의 예언자 마호메트도 쌀 요리를 즐겼다고 합니다. 마호메트의 언행을 기록하고, 전하는 하디쓰(Hadith)에도 “쌀은 영양이 풍부한 곡식으로 쌀을 먹으면 즐거운 꿈을 자주 꾸게 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만큼 쌀을 귀중하게 여겼다는 반증이 되겠습니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파스타와 함께 다양한 리소토를 맛볼 수 있습니다. 무심코 먹는 이탈리아 쌀밥이지만 그 속에는 스페인을 거쳐 아랍과 페르시아 왕국까지 이어지는 음식의 문화와 역사가 깃들어 있습니다. 리조또와 같은 서양 쌀 요리가 고려와 조선시대 임금님이 드셨다는 보양음식, 타락죽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지금까지 리조또로 본 서양 쌀밥의 계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Designed by Tistory.